그렇게 큰 논란이 됐던 미수다 루저녀 편을 엊그저께 본 나는 그야말로 뒷북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일하기에 바빠 관심을 두지 못하다가 결국 과제 때문에 보게 된 이 예능프로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루저녀 사건이 터진지 벌써 일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때, 비단 루저녀 이도경씨 뿐만이 아닌 여대생 패널,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자신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하지 않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여대생 물 먹인 여대생 패널들
각 학교를 대표해서 나온 여대생들이 하는 말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어떻게 ‘180cm 이하 남자는 루저’ 라는 말만 그렇게 큰 관심을 끈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대생들의 다른 대답 내용 역시 충격적이다. 그 중 가장 어이없는 것은 더치페이에 대한 최한빛 양의 견해이다. 자기 만한 여자를 만나려면 남자가 모든 데이트 비용을 대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그녀의 발언은 모든 외국인 여성 패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뒤에 그녀가 자신의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여자가 남자를 생각해서 꾸미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만큼, 남자도 그것을 인정하고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고 변명을 시도하나, 그 역시 앞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여자를 만날 때 그럼 남자는 자신을 가꾸지 않는가? 아니다. 남자 역시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옷을 고르고 자신을 가꾸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설사 여자가 남자보다 자기 가꾸기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데이트 비용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결국 남자가 돈을 내야 한다는 최한빛양의 발언은 여성은 아직도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비독립적 존재라는 인식을 전제한 것이다. 그야말로 치욕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여대생을 대표한답시고 나온 자리에서 그렇게 개념 없이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은 분명히 사과해야 할 일이다. 그 외에도 많은 패널들이 조건과 사랑에 관련된 주제를 놓고 대한민국 여대생의 이미지에 먹칠을 해댔다. 물론 결혼을 할 때는 누구나 조건을 본다. 그러나 그 조건은 ‘경제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가정 분위기, 성격, 상대의 취미, 취향 등 다양하다. 그런데 패널들은 조건이 마치 능력의 동의어인 냥 사용했다. 이렇게 민감한 문제에 있어 좀 더 명석하게 답변하지 못하고 논란거리를 만들어 내려는 제작진의 의도에 휩쓸려 간 것은 패널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제작진. 본래 의도는 개나 줘라?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의 본래 목적은 세계화 속에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한국 내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회차의 목표는 ‘논란거리’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진 듯 하다. 일단 하고많은 주제 중에서, 왜 하필 연애와 미용이었는가? 이러한 소재는 결국 여성 그 자체가 아닌, ‘남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여성’이 지니는 의미, 역할 등으로 이야기를 제한시킨다. 방송 뒷부분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여대생들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들도 거의 전부 여성 비하적인 것들이다. 수업시간에 화장하는 여성, 명품가방만 매는 여성 등, 방송에서 거론되는 여대생의 모습은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한국 여대생들의 보편적인 모습은 아니다. 대학에 다닌 지 1년이 넘었으나 수업시간에 화장하는 사람을 본 경우는 단 한번도 없고, 주위에도 명품 가방을 매는 친구는 많지 않다. 주제 및 질문의 보편성과는 무관하게 그것들을 한정시킨 뒤 제작진은 내용의 왜곡에 집중한다. 왜곡의 수단으로 가장 빈번히 이용된 것은 자막이다. 일례로, 이도경양이 조건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그녀가 ‘저학년 때에는 아무나 만날 수 있어도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다’ 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저학년일 때는 대충 사귀지만’ 이라는 자막이 붙었다. 특히 대충이라는 단어는 빨간 색으로 다른 글자들보다 크게 나와있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그녀가 했던 말을 표현하기에는 어감이 너무나 강하고 그 의미 역시 다르다. 제작진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자막을 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그들만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방송을 분석해가다 보면, 편집의 의도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촬영 중 분명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외국인 여성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도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된 부분에서 두 집단은 극과 극에 서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또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각 물음에 대해서 여대생 쪽에는 부정적인 대답을 한 사람들의 견해만 듣고, 외국인 쪽에서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대답한 사람들의 견해만 듣는다. 예를 들어, ‘조건 VS 사랑’ 의 물음에 대해 사랑 없이도 조건만 맞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한국 여대생은 3명 뿐이었다. 그런데 답변의 초점은 모두 이 3명에게만 맞춰지고 결혼할 수 없다는 나머지 사람들의 견해는 방송을 타지 않았다. 결국, 제작진은 한국 여성을 아직까지도 보수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으로 그려나고자 안간 힘을 다한 것이다.
방심한 시청자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패널들과 제작진을 응징할 수 있는 힘은 다름아닌 시청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미수다를 본 시청자들의 초점은 온통 ‘루저’라는 단어에만 쏠려 있었다. 작은 것에 집중하느라고 큰 그림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180 cm 가 안 되는 남성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미수다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여성들은 정말로 반성해야 한다. 대한민국 여대생의 위상이 몇몇 소수에 의해 편협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을 수용하기만 한 사람들 역시 왜곡에 동참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릇된 것을 본 뒤에는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일명 ‘미수다 루저녀 사건’ 은 어떻게 보면 개념 없는 패널들로 인해 붉어진 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매체의 힘을 악용해 여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강화시키고 논란거리를 만들어내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숨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방송은 절대 생각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청자가 긴장을 놓는 순간 제 2, 3의 루저녀 사건은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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